[스포츠서울닷컴 | 나지연·서보현기자] "누가 키웠나" vs "누가 버렸나"
연예계가 전속계약 분쟁으로 얼룩지고 있다. 최근 전 소속사로부터 10억원 상당의 소송을 당한 윤상현부터 소속사에 전속계약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낸 동방신기까지, 이제 막 떠오른 스타부터 아이돌 가수들이 소속사와 갈등을 빚고 있다.
전속계약 분쟁이 일어나면 양측의 입장은 극명하게 엇갈린다. 소속사는 "스타로 만들기 위해 인·물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는 입장이고, 연예인은 "사이가 틀어진 근본적인 원인은 소속사에 있다"고 주장한다.
사실 연예인과 소속사의 분쟁은 하루이틀 사이에 일어난 문제가 아니다. 윤상현과 동방신기 전에도 남규리, 송선미, 지상렬, 엠씨 더 맥스 등이 소속사와 진통을 겪었다. 이들 중 대다수는 갈등을 넘어 법적 싸움으로 이어지면서 끝내 소속사와 결별을 택했다.
한때는 동고동락하며 지냈던 연예인과 소속사의 분쟁이 끊이지 않은 이유, 왜일까.
◆ "어제의 동료가 오늘의 적"…끊이지 않는 분쟁
연예인과 소속사가 분쟁을 겪는 이유는 다양하다. 그 중에서도 돈, 전속계약 기간, 생활 태도 등이 주된 이유로 지목되는 경우가 많다. 이럴 경우 대부분 갈등을 넘어서 법적인 절차까지 밟게된다. 그야말로 어제의 동료가 오늘의 적이 되는 식이다.
동방신기는 전속계약 기간을 문제삼아 소속사와 대립각을 세웠다. 믹키유천, 시아준수, 영웅재중은 "13년의 전속계약은 사실상 종신계약을 의미한다"며 소속사를 상대로 전속계약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반면 SM은 "상호 합의하에 갱신하고 수정했던 내용"이라며 "소송의 원인은 화장품 사업때문"이라고 반박했다.
윤상현의 경우는 또 다르다. 계약서의 잘못이 아닌 해석의 차이로 갈등의 골이 깊어진 상태. 전 소속사 엑스타운은 "계약서상 출연료 지급 기한이 명시돼 있지 않다. 회사 사정상 지급이 늦어졌고 이에 차기작 '집으로 가는 길'을 통해 정리(회사가 가져가야 할 몫을 넘기겠다)하겠다고 말했다"면서 "하지만 윤상현이 일방적으로 드라마를 하차하고 새 기획사로 옮겼다. 출연료를 정리할 기회도 안주고 계약위반이라고 하니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고주원의 경우는 생활태도가 갈등을 일으킨 유형이다. 하하엔터테인먼트는 "고주원이 드라마 촬영 당시 스태프에게 폭언을 하는 등 불성실한 태도를 보였다"며 "이는 품위유지에 대한 계약 조항을 어긴 것"이라고 2억 5000만원의 손해배상청구소송을 걸었다. 현재 고주원은 계약금 지급의무 위반을 이유로 소속사를 이탈한 상태다.
◆ "같은 사례 다른 판결"…역대 소속사 분쟁 판결
그렇다면 앞서 전속계약 분쟁을 겪었던 스타와 소속사의 판결은 어떻게 나왔을까. 최근 소속사와 갈등을 보여 법적 다툼까지 간 송선미, 지상렬, 엠씨 더 맥스, 유리 등은 비슷한 사례지만 상반된 판결을 받아 눈길을 끌었다.
계약 위반과 방송 출연 거부 등으로 소속사로부터 소송을 당했던 송선미와 유리는 상반된 결과를 맞았다. 송선미는 더컨텐츠 엔터테인먼트의 패소가 결정되면서 미지급된 출연료를 받게 됐다. 서울중앙지법 민사 47단독은 지난 6월 "송선미의 행동은 채무 불이행으로 볼 수 없다"며 "더컨텐츠는 5400만 원의 미지급 출연료를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반면 그룹 쿨의 유리는 전 소속사 인플레이에 1억 2000만원을 배상하게 됐다. 재판부는 지난 4월 "유리가 지난 2007년 매니저와 함께 인터넷 쇼핑몰을 운영해 브랜드 판매 계약을 위반했고 예정됐던 방송을 거부하면서 회사에 손실을 입혔다"며 "소속사 인플레이에 배상할 필요가 있다"고 판시했다.
전속계약 해지를 둘러싼 소송에서도 결과는 다르게 나왔다. 팬텀 엔터테인먼트를 상대로 전속계약해지와 관련된 소송을 제기한 지상렬은 지난 6월 원고 승소 판결을 받았다. 당시 재판부는 "소속사가 지상렬에게 정산금, 코디 급여 등을 지급하지 않아 계약을 위반했다"며 "지상렬의 계약 해지 통지로 적법하게 계약이 해지됐다"고 밝혔다.
하지만 엠씨더맥스는 계약파기를 이유로 전 소속사 유앤아이 엔터테인먼트에 약 1억 5000만원 상당의 손해배상금을 물게 됐다. 민사합의 27부는 지난 1월 "엠씨더맥스 멤버들이 각각 5000만원씩 배상하라"며 "전속계약 종료 전에 타 기획사와 계약을 맺었으므로 전속 계약 파기로 인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판단했다.
◆ "뜨고 나니 독립?"…소속사 분쟁 계속되는 이유
문제는 현 연예계가 분쟁이 계속될 수 밖에 없는 구조라는 것이다. 소속사와 연예인이 동등하게 계약을 할 수 있는 법적인 제도가 마련되지 않은데다 동반자 의식을 가진 파트너는 거의 없다. 이렇다보니 서로 목적이 달라질 경우 소속사 분쟁은 비일비재해질 수 밖에 없다.
분쟁이 계속되는 근본적인 원인은 신뢰 부족이다. 소속사와 연예인 사이의 인간적인 믿음 관계가 깨진다면 계약 자체는 무의미해 질 터. 믿음이 없어지면서 돈, 계약 조항 등의 불만이 쌓여 법적 싸움까지 가는 것이다. 최근의 계약 분쟁도 상호간 신뢰가 깨져 생긴일들이었다.
대표적으로 윤상현의 사례를 들 수 있다. 윤상현 전 소속사 엑스타운은 "충분히 대화로 풀 수 있는 문제였는데 윤상현이 어떠한 연락도 받고 있지 않아 소송을 걸게 됐다"며 "돈을 떠나 그에 대한 신뢰를 잃은 상태"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윤상현 현 소속사 측은 "대화로 풀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라고 법적인 절차로만 소통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실효성없는 표준계약서도 문제다. 지난달 공정거래위원회가 발표한 표준계약서는 기준이 모호하고 법적 강제성이 없어 실현가능성이 적다는 평을 받았다. 여기에 연예제작자협회의 반발이 이어지면서 사실상 무용지물이 됐다.
한국방송영화공연예술인 노동조합 문제갑 정책위원회 의장은 표준계약서 발표 당시 "관행상 기획사의 우월적인 지위는 바뀌지 않을 것"이라며 "시장의 자유로운 계약에 맞겨둔다면 이 표준약관은 공염불"이라며 문제점을 꼬집기도 했다.
◆ "신뢰없는 한 악순환 반복"…소속사 분쟁 해법은?
결국 "누가 키웠나"와 "누가 버렸나"의 문제다. 예를 들어 소속사의 경우 시간과 돌을 들여 스타로 만들었기에 그에 합당한 기간에 맞게 계약을 이행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연예인들은 상품이기에 앞서 인간이기에 불공정한 거래에 따른 계약 조항은 따를 수 없다는 생각이다.
그렇다면 소속사 분쟁을 막을 만한 방법은 전혀 없는 것일까. 연예계 관계자들은 신뢰회복을 1순위로 꼽았다. 연예인과 소속사의 갈등이 실망에서 시작되는 만큼 신뢰 회복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법적인 제재만 이뤄지는 것은 무용지물이라는 것이다.
한국 연예 제작자 협회은 신뢰회복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관계자는 "서로 양보하고 믿는 마음이 없으면 함께 일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며 "연예인과 소속사가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돼야 한다"고 밝혔다.
법 적인 규제 마련도 시급하다. 보다 현실에 맞는 맞춤형 표준계약서가 필요한 상황. 가수협회 김원찬 총장은 "공정위에서 통용될 수 있는 표준계약서를 만들고 그에 합당한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며 "서로 소통할 수 있는 창구를 만든 후에 국민적인 이해를 이끌어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김용덕·이승훈·이호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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